4일 예술의전당 듀오 리사이틀
20세기 초중반 작곡가로 구성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떻게 보면 조금은 다른 색깔일 수 있는데 맞춰갈 때의 성취감, 어떤 색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어요.” (최형록)
첫 만남은 불과 다섯 달 전. “그 이전엔 사실 모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음반(KBS 클래식FM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2’) 녹음차 처음 만난 이후 빠르게 가까워졌다. 음악가들은 ‘척하면 척’이다. 나에게 잘 맞고, 단짝이 될 만한 파트너를 기막히게 알아본다.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23)과 피아닌스트 최형록(31)도 그랬다. 여덟 살 차이의 두 연주자가 이번엔 듀오 리사이틀(3월 4일·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로 관객과 만난다. 음반 녹음에 이어 또 한 번의 프로젝트.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다 알지 못한 음악적 세계관을 넓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연주회는 임동민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콘서트이면서, 듀오로도 첫 무대다. 공연의 제목은 ‘새로운 장’(A New Chapter).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듯 프로그램도 관객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야나체크, 풀랑크, 사리아호, 버르토크라는 세계를 선택했다. “고전, 낭만 시대와 같은 큰 틀이 잡혀 있는 시대에서 넘어와 인상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등장하는 시기의 프로그램을 구성했기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설명이다. 이들에게도 도전이 될 만한 프로그램이다.
임동민은 “세계대전 시기인 20세기 전후 음악사적으로 격변하던 때의 작곡가들을 골랐다”며 “(작곡가들이) 다양하게 채집한 민속적 선율과 클래식의 결합으로 독자적 개성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음악적 억양을 녹였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야나체크와 버르토크는 민속음악 선율을 수천 개 이상 채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나체크가 제1차 세계대전 중 작곡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작곡가 야나체크가 포탄 소리의 환청에 시달리며 쓴 곡이다.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의 ‘녹턴’(1994)은 소리의 해체와 재구성한 실험적 작품이다.
임동민은 “20세기 이후 음악이 난해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 번에 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는 곡으로 꾸몄다”고 했다.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이지 리스닝의 유쾌한 요소도 많다”고 귀띔했다. 모든 곡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직관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조와 대비 스릴이 넘치는 음악”이라는 설명이다.
두 사람의 교집합은 20세기 이후 음악에 대한 애착이다. “고전시대 음악보다 파격적이라 새로운 요소가 많고 해석의 여지가 크다”는 점이 연주자로서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다.
최형록은 “고전은 기존 연주가 많아 정형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현대곡은 해석 면에도 자유도가 있다”며 “다만 작곡가의 의도를 연구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곡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은 그가 음악가로서 늘 견지하는 태도다. 센다이국제음악콩쿠르 당시 심사위원 안드레아 보나타는 최형록에 대해 “작곡가의 음악언어를 존경할 줄 아는 연주자”라고 평가했다.
공연의 프로그램은 임동민이 제안했고, 최형록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최형록은 “(임동민은) 첫인상은 다가서기 어려웠지만 급속도로 호흡이 잘 맞아떨어진, 몇 안 되는 연주자 중 한 명”이라며 “(프로그램 제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음악적으로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하게 됐다”고 했다.
만능 재주꾼(ISTP) 유형의 임동민과 내향적 이상주의자(INFP)인 최형록은 분위기는 정반대이나 묘하게 어우러진다. 음악 외엔 특별한 취미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한다. 요즘 최형록은 취미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매진하는 피아노 연습이다. 임동민은 문득 쑥스러운듯 “공원에 가 바람을 쐬며 멍 때리는 데에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가 가수 크러쉬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 ‘멍 때리기’ 세계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다변가는 아니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차분하고 논리적인 이들은 서로 다른 색채를 가진 두 연주자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더 큰 시너지가 난다고 입을 모은다. “서늘한 음색과 날카로운 테크닉의 바이올린”과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게 감싸안는 피아노”의 조화로움이 최형록이 생각하는 둘의 강점이다. “가을의 최형록과 겨울의 임동민이 가진 감성이 녹아들 것”이라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부터 착실히 ‘음악 영재’ 코스르 밟아온 임동민은 피아노를 배우다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다. 피아노에선 만나지 못한 현이 내는 소리의 매력에 빠져 이 길을 가게 됐다고 한다.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해 국내외 유수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현재는 이든 콰르텟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솔로 레퍼토리에선 접할 수 없는 경험을 콰르텟을 통해 배우고 있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구미에서 나고 자란 최형록은 누나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이 눈에 띄는 아이였다. 일곱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누나가 치던 곡을 악보도 보지 않고 쳐내려갈 만큼 천부적 재능에 절대음감이 더해졌다. 2019년 센다이 국제 콩쿠르에서의 우승과 2021년 쇼팽 국제 콩쿠르 본선 진출은 그의 이름을 세계 무대에서도 알리게 된 계기였다. 누나(최해든)와는 ‘블리쉬 녹턴’이란 그룹을 결성해 대중음악 음반도 냈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착실히 음악 영토를 넓혀온 두 사람은 솔로로도 듀오로도 새로운 꿈을 꾼다. 저마다의 바람에 두 사람이 닿고 싶은 음악가로의 이정표가 세워진다.
“정직하고 솔직한 음악가이고 싶어요. 음악은 굉장히 솔직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보여질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지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음악을 통해 다 보여지기에 정직하게 살면서 음악으로 위로하는 사람이고 싶은게 제 꿈이에요.” (최형록)
“진부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 그게 저의 지향점이에요. 늘 하던 것, 해오던 것을 경계하고 있어요. 아무리 많은 연주를 해도 항상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탐구하면서 진부함을 벗는 음악가이고 싶어요.” (임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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