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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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저용량의 아스피린이 암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라울 로시추두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연구팀은 아스피린이 암 전이를 방해하는 신체의 면역 반응을 강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6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암 전이는 원발암에서 떨어져 나온 암세포가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다른 장기로 퍼지는 현상이다. 전이암은 전체 암 사망의 90%를 차지할 만큼 치명적이다. 암세포가 전이되는 과정에서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암세포가 면역 회피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혈액 내 혈소판이 분비하는 생리활성물질인 ‘트롬복산 A2(TXA2)’가 면역세포인 T세포의 기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롬복산 A2는 T세포 내부의 단백질 ‘ARHGEF1’을 통해 신호전달을 방해하고 T세포의 증식과 활성화를 막았다. 이를 통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그 결과 암 전이가 방치됐다.

연구팀은 또 아스피린이 생리활성물질의 생성을 감소시키는 효능에 주목했다. 연구에 따르면 아스피린의 성분인 아세틸살리실산은 혈소판에서 생기는 효소인 사이클로옥시게나제-1(COX-1)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트롬복산 A2 생성을 줄인다.

실제 유방암, 피부암, 대장암 등 여러 암 모델을 대상으로 생쥐 실험을 진행한 결과 아스피린을 투여한 쥐에게선 폐, 간 등으로의 전이 발생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아스피린을 장기간 투여해도 면역세포의 기능 저하나 내성 문제는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아스피린은 비교적 저렴하고 부작용이 적은 약물인 만큼 암 전이를 막는 면역 보조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람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날지는 추가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아스피린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비 로웨스 영국 레딩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스피린이 T세포 면역 반응을 유지시키는 새로운 기전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도 “아직 사람에게 아스피린을 권장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아스피린이 위장 출혈 등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무작정 복용하기보다는 임상시험을 통해 어떤 암종과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지 규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가 새로운 암 전략 치료 개발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알란 멜처 영국 암연구소 교수는 “아스피린의 면역 증강 효과를 알려주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확인한 점이 흥미롭다”며 “이 연구를 기반으로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를 높인 새로운 약물 개발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랫 교수는 “아스피린이 암 사망률을 줄인다는 연구가 많았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었다”며 “이번 연구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춘 셈”이라고 말했다.

이들 전문가는 암 환자가 임의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아스피린은 일부 환자에게는 위장 출혈, 장기 손상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상담과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받은 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암 전이 과정에서 면역 억제 환경을 조성하는 혈소판의 역할을 규명한 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기존에는 혈소판이 출혈을 막는 응고 작용에만 관여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암세포 보호와 면역 억제에도 깊게 관여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향후 아스피린과 다른 면역치료제를 병행해 전이암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