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잔혹성 기질 타고난 아이 ‘소현’

엄마의 심리 주시하게 하는 영화 ‘침범’

성인 된 소현, 권유리·이설 중에 누굴까

영화 ‘침범’의 한 장면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침범’의 한 장면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내가 낳은 아이가 동물을 죽이는 것을 즐거워하고 엄마인 나를 밤마다 몰래 식칼로 그어 피가 베어나오게 한다면. 그래서 하루하루가 긴장과 두려움으로 점철된다면.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침범‘에선 소현(기소유 분)의 엄마 영은을 연기한 배우 곽선영의 심리 상태를 계속 주시하게 된다. 내가 영은이라면, 내가 영은의 남편이라면, 아이를 계속 키웠을까 아니면 도망갔을까.

갓난아기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기 전에 이미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란 것이 있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어떤 아이는 순하고 어떤 아이는 요란하다. 하지만 대체로 ‘평균’의 범주 안에서 차이가 있을 뿐인데, 소현이는 그 범주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소현은 “선천적 사이코패스”다.

수영 강사로 일하는 영은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얼굴이 흙빛이 된다. 급히 집으로 뛰어간 그는 아파트 단지 안에 한가득 몰려있는 인파 속에서 일곱살 딸 소현이를 마주한다. 영은은 인근 야산에 가 죽은 반려견 초롱이를 묻으며 “한 집에서 같이 밥먹고 자면 식구야. 초롱이는 우리 식구”라고 울음을 삼키며 말한다. 하지만 소현은 “초롱이는 가족이 될 수 없는데? 동물인데”라며 영혼없는 눈동자를 굴리며 되묻는다. 창문 밖으로 강아지를 집어던진 아이는 ‘가족’이라고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영은의 몸에는 얕게 난 칼 자국이 여럿이다.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그의 앞에 딸 소현이 우두커니 서있다. 부엌 식칼을 비롯해 무기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은 찬장 안에 넣고 자물쇠를 잠그는 것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엄마 몸을 칼로 그어놓고 피가 배어나오는 것을 관찰하는 여섯 살 아이. 남편은 악마같은 자식이 무서워 이혼 후 도망갔다. 영은은 둘만 남은 집에서 옆방에서 자고 있는 딸이 또 자신을 해할까 두려워하며 간신히 잠을 청한다.

또래 친구들은 소현에게 쉬운 먹잇감이다. 숨참기 놀이를 하자며 질식을 유도하고, 공포체험을 하자며 놀이터 시소 밑에 드러눕게 해 머리를 가격한다. 덕분에 유치원을 여러 번 옮겨다녔다. 소현의 잔인성을 어떻게든 상쇄하기 위해 영은은 시골닭을 잡게 한다. 진정으로 닭을 토막내는 것을 즐기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소현은 “엄마, 초롱이랑 시골닭이랑 둘 다 같은 동물이지”라고 물으며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영은은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다.

곽선영은 최근 시사회에서 “단지 모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보통의 가족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 보이고 싶은 마음, 그동안 노력한 것이 아까우니 조금만 더 해보자는 미련이 합쳐져 영은이 소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영은의 마음이 전기가 나가듯 툭 끊어진 사건이 결국 벌어지고 만다. 아이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영은은 깊은 새벽, 자기에겐 가장 마음이 편하고, 소현은 가장 취약해지는 수영장으로 간다. 하지만 그날 밤 수영장에서 살아남은 건 소현 뿐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민(권유리 분)과 해영(이설 분)이 등장한다. 보육시설에서 ‘이모’를 만나 이모네 부부가 하는 고독사 청소업체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민은 말수가 적고 어두운 여자다. 죽은이의 물건 중에 값 나갈 만한 것들을 챙겨 중고거래를 하는 비상식적인 면모도 보인다. 고독사 청소일이 워낙 험하고 고된 탓에 새로운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던 찰나, 민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 해영이 신규로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시설 출신인 고아인데, 가방 안에 휴대폰만 여러 개가 있을 정도로 수상하다. 거친 환경에서 자란 둘이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위험하다.

영화 후반부는 ‘둘 중 누가 어른이 된 소현일까’를 추리하는 데 시간을 모두 쓰게 된다. 민은 잔혹성과 폭력성 보다는 우울해보이는 인상이 강하고, 해영은 적어도 겉으로는 사회 생활을 잘하는 싹싹한 모습이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여배우 네 명이 두 시간을 꽉 채워 긴장과 몰입을 끌고간다. 그 중에서도 어린 소현을 연기한 아역배우 기소유는 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입틀막’을 할 정도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소현이 우리의 일상에 ‘침범’하면 우리는 영은이 될까, 영은의 남편이 될까. 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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