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봉 영화 ‘침범’에서 연기 변신

소녀시대 ‘유리’ 대신 배우 ‘권유리’ 남아

모성·인간 기질에 대한 ‘치열한 고민’ 기회

영화 ‘침범’에서 ‘김민’ 역을 연기한 배우 권유리를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침범’에서 ‘김민’ 역을 연기한 배우 권유리를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세상의 밝은 빛은 모두 그녀를 비껴간 듯하다. 유복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온 ‘김민’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삶에 큰 애착을 느끼지 못하기에 뱃속에 생긴 아기에 대해서도 냉소적이다. 고독사 현장 청소를 끝내고 짜장면을 먹다 찾아온 욕지기에 홀로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임신사실을 알고 나온 그는 자연스레 담배 한 개비를 꺼내문다.

12일 개봉하는 영화 ‘침범’에서 ‘민’을 연기한 배우 권유리를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임산부가 담배를 피는 모습에)많은 분들이 놀랄 수 있는데, 저는 충분히 대본의 캐릭터상 민이가 임신소식을 듣고도 흡연할 수 있다고 봤다”고 조심스레 운을 뗏다.

“사실 캐릭터상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 애초에 ‘놀랍다’고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 행동이 소녀시대 ‘유리’의 이미지를 헤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저는 사실 더 파격적인 역할이 와도 충분히 할 준비가 되어있거든요.”

권유리가 연기한 민은 영화 ‘침범’의 2부에서부터 등장한다. 1부는 날때부터 ‘사이코패스’로 태어난 어린 소현과 그의 엄마 영은(곽선영 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20년이 흐른 뒤 민과 해영(이설)이 등장해 둘 중 누가 성인이 된 소현인지를 추리해나가게 된다.

영화 ‘침범’에서 권유리는 매끈하지 않은 둔탁한 모습의 ‘민’을 연기한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침범’에서 권유리는 매끈하지 않은 둔탁한 모습의 ‘민’을 연기한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소현은 과연 민일까 해영일까, 알듯 말듯 줄을 타는 연기와 연출에 관객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권유리는 “‘소현이가 민인지 해영인지 어느 시점까지도 감을 못잡겠더라’는 피드백을 받으니 뿌듯했다”며 “그 정도만 해도 성공했다. 팽팽하게 잘 해왔다, 그런 생각이 들어 안도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처음 그에게 주어진 시나리오에도 누가 소현인지 정확히 나와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권유리는 “워낙 추리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었기 때문에 사실 대충 (누가 소현일지)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민은 주근깨 가득한 거친 피부와 조금은 둔탁한 몸을 가진 여자다. 거친 외양은 그가 고인의 유품을 빼돌려 중고거래를 하고, 폭력적인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사고로 임신하는 민의 캐릭터를 해치지 않았다. 그간 그가 출연한 어떤 작품에서보다도 ‘소녀시대 유리’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권유리는 “언젠가 한번은 이렇게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김여정, 이정찬 두 감독님이 (나를 써주는)용기를 내준 것 같다”고 밝혔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제가 연예계 활동을 좀 오래했다보니까, 민에게서 그동안 비춰지지 않았었던 권유리의 얼굴과 눈빛이 보였으면 좋겠었어요. 제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어 저사람 누구야?’ 이렇게 좀 못알아봤으면 했거든요. 기존의 매끈하고 정돈된 ‘유리’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는게 목표였죠.”

그가 작품에 느끼는 감정도 한층 더 깊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몰입하기 쉬운, 술술 읽히는’ 심리 스릴러인데다, 여성 인물들만 여럿 등장해 무겁게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이 정말 시의적절하게 찾아온 거 같아요. 너무 신선한 시나리오인데, 동시에 몇 없는 등장인물까지 전부 여자인 작품이잖아요. 감독님한테 ‘어떻게 저한테 김민 역할을 주셨어요. 저 되게 기다려왔어요’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먼저 두드려 주셨잖아요’하시더라고요. 돌이켜보니까 제가 첫 미팅 때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로든 쓰임당하고 싶다’고 강력히 어필했더라고요.(웃음)”

촬영 기간동안 깊은 사색의 시간도 함께 했다. 권유리는 “작품에서 얘기하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모성애’는 여자라면 한번쯤 꼭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다. 근데 ‘이게(절대적 모성애) 과연 보편적인 생각일까’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봤다”며 “아울러 인간의 기질에 대한 고민도 해봤었던거 같다. 여자로서 흥미로웠던 주제들”이라고 돌아봤다.

‘침범’을 통해 배우 권유리로서 입지를 한 단계 정립해나갈 그는 ‘연기 변신이다’, ‘호연했다’는 평에 생각외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저도 제가 ‘침범’같은 작품을 할 줄 몰랐는데, 이런 작품도 나한테 오는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생각하며 살다 보니 이런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해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어요.”

한편 소녀시대의 상당수 멤버들이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든든한’ 느낌을 받는다는 너스레도 더했다. “서로 작품할 때 현장에 커피차를 통크게 보내주거든요. 다들 많이 컸죠.(웃음)”


th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