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146조원 규모 신규 투자 발표

삼성·SK 향한 美 정부 압박 거세질 전망

D램 75% 생산 책임지는 韓, “휘둘릴 필요 없다”

수주형 아닌 메모리 특성상 대거 증설 어려워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전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미국에 146조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압박감도 높아지고 있다. 기존 대미(對美) 투자에 대해 약속받은 보조금 지급 마저 불투명해짐에 따라, 미국 내 메모리 생산시설 확충에 대한 고민이 커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전세계 D램의 4분의 3이 한국에서 생산되는 만큼, 트럼프 정부의 ‘으름장’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3일(현지시간)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후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신규 투자금은 애리조나주에 5개의 제조시설을 건설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는 수천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오늘 발표로 TSMC의 대미국 투자는 모두 1650억달러가 된다. 이것은 미국 및 TSMC에 엄청난 일”이라고 밝혔다.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대만 반도체업체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이 TSMC가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AFP]
3일(현지시간)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대만 반도체업체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이 TSMC가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5조9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AFP]

TSMC는 친미(親美)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확대를 이어왔다. 트럼프 정부 1기인 2020년 애리조나에 12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바이든 정부 시절 투자 규모를 650억달러로 확대했고,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66억달러(약 9조2000억원)의 지원금을 지급받기로 약속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현황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현황

보조금을 미끼로 미국 내 투자를 유도했던 바이든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하며 ‘채찍’ 전략을 쓰고 있다. 삼성과 SK는 바이든 정부 시절 발표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약속받았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이마저도 불확실해졌다.

이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미국에서 생산해야 관세를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재거론한 뒤 “만약 (TSMC가) 대만에서 (첨단 칩을) 만들고 미국으로 보낸다면 25%나 30%, 50% 등 어떤 수치가 됐든지 간에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계속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점에서 웨이 회장은 게임에서 훨씬 앞서간 것”이라고 강조했다.

TSMC의 신규 투자를 계기로 미국 정부의 한국 업체들을 향한 메모리 생산시설 투자 압박도 높아질 전망이다. 컨설팅기업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세계 D램 메모리의 약 75%가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 AI 운영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생산은 한국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다각화를 이유로 아시아 쏠림 현상을 비판해왔다.

[헤럴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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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과의 안보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대만은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무시할 수 없지만, 한국은 아니다”라며 “전세계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건 한국, 미국, 중국 뿐인데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모리 반도체 투자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압박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한국이 크게 휘둘리거나 대만처럼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메모리 반도체는 HBM 등 AI용 제품을 제외하면 수주형 제품이 아니어서 생산시설을 급격히 늘리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는 TSMC 파운드리의 경우, 미국에 빠른 속도로 대규모 생산시설을 지을 수 있지만 메모리는 다르다”며 “무작정 생산시설만 늘리면 공급량 증가를 야기하고 이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범용 D램인 DDR4과 LPDDR4의 경우 중국 업체들이 시장 수요와 관계없이 저가로 공급량을 크게 늘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범용 메모리 사업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바 있다.

삼성과 SK 양사 모두 국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수백조원의 투자를 진행 중이어서 여유자금 확보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에 360조원,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2조원을 투입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단·일반산단 예정지로 핫해진 용인시 처인구 일대 아파트와 토지가격의 온도차를 알아봤습니다. 사진은  SK하이닉스가 원삼면 일대 416만㎡ 부지에 조성중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헤럴드경제DB]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단·일반산단 예정지로 핫해진 용인시 처인구 일대 아파트와 토지가격의 온도차를 알아봤습니다. 사진은 SK하이닉스가 원삼면 일대 416만㎡ 부지에 조성중인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 [헤럴드경제DB]

하지만 AI 열풍으로 북미 빅테크 기업 대상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려해봐야 할 요소다.

SK하이닉스의 미국 판매법인 ‘SK하이닉스 아메리카’는 지난해 매출 33조48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매출(12조5419억원) 대비 무려 2.6배 증가한 수치다.

미국 판매법인을 포함한 미국 고객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 3분기(누적)까지 국내외 지역별 매출 합계(46조4259억원)에서 미국은 58%(27조3058억원)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가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HBM의 주요 고객은 엔비디아로, 미국에는 서버용 제품(AI 메모리)을 사들이는 빅테크들이 몰려 있다.


jakme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