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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유럽의 잘못된 디지털 경쟁 관련 규제를 모방함으로써 큰 대가를 치를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 정부가 주요 인터넷 플랫폼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경쟁 규제안은 디지털 시장 기능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으며, 국내 소비자를 이롭게 하기보다는 온라인 경험을 저해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대형 기술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하는 이 규제안은 이미 적대국,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부과할 명분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트럼프가 보복 조치를 취하고 긴장을 고조시킬 명분을 찾기 전에 신중히 재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 추진하는 플랫폼 경쟁 촉진법(PCPA, Platform Competition Promotion Act)은 EU의 디지털 시장법(DMA, Digital Markets Act)을 모델로 삼아 소셜 미디어, 검색 엔진,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와 같은 플랫폼에 엄격한 규제를 부과하려는 법안이다. 동시에 공정거래위원회도 유사한 방향으로 경쟁 규제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온라인 ‘개혁’은 검색 결과의 순위 매기기, 제품 표기 방식, 서비스 통합 방식 등을 제한하는 등 여러 측면에서 플랫폼 운영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규 기술 규제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문제를 초래했다. 유럽 디지털 시장법은 아직 도입 초계 단계지만, 이미 사용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며, 스타트업 확장을 어렵게 만들어 많은 기업의 역외 이전을 촉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유럽에서 일부 검색 기능을 제거해야만 했으며, 사용자들은 한 플랫폼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정보를 찾기 위해 이젠 여러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애플도 강제적으로 제3자 앱스토어를 허용하게 되면서 보안 위협이 증대됐고 유저들의 불편함도 커졌다.

유럽의 디지털 시장법 도입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한국에 주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예를 들어, 카카오가 카카오페이 내 경쟁 결제 서비스를 허용하도록 강제된다면, 채팅-쇼핑-결제가 원활히 연계되는 통합 시스템이 붕괴되어 사용자 거래가 불편해질 수 있다. 나아가, 정부가 기업이 자사 제품을 홍보하거나 여러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일반적 사업 관행을 금지한다면, 디지털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하고 사용자 친화성도 저해될 것이다.

실제로 현재 많은 중소 브랜드와 소매업체들은 쿠팡과 네이버 쇼핑 등의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연결된다. 그런데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검색 결과에서 경쟁업체를 우선적으로 노출할 의무를 진다면, 소규모 사업자들의 대고객 거래는 자연히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플랫폼 경쟁 촉진법과 공정위의 변경 규제안은 한국과 미국 기업을 옥죄는 반면,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은 규제를 벗어나게 된다. 한국의 규제는 특정 시장 기준을 충족하는 플랫폼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주로 국내에서의 매출 혹은 사용자 수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중국 IT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어 규제 감시망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구글과 애플 같은 미국 기업과 네이버, 쿠팡 등의 한국 기업들은 관련 기준을 초과할 가능성이 높아 새로 도입될 규제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 기업들이 규제 준수와 경영 활동 제한 강화로 어려움을 겪는 동안, 중국 기업들은 AI, 클라우드 컴퓨팅, 이커머스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하며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다. 일례로, 알리바바와 핀둬둬 (Pinduoduo)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대기업들은 한국을 포함한 공격적 해외 시장 진출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낮은 비용과 정부 보조금을 활용해 한국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며, 그 결과 쿠팡과 네이버 등 국내 기업이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한국 기업들이 검색 결과와 쇼핑 경험 개인화 방식에 대한 규제를 받을 시, 중국 플랫폼들이 더욱 불공정한 우위를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문제는 단지 기술·경제적 이슈가 아니라 외교적 사안이기도 하다. 확실히 알아 두어야 할 점은, 이러한 규제 도입의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한미 무역관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캐롤 밀러(Carol Miller, 공화당, 웨스트버지니아주) 의원은 한미 디지털 무역 집행법(U.S.-Republic of Korea Digital Trade Enforcement Act)을 발의했다.

이는 한국의 무역 정책을 면밀히 조사하고 미국 기업이 차별적 조치를 받을 경우 보복 조치 집행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한국이 플랫폼 경쟁 촉진법을 지속 추진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에 강한 경고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 지명자인 제이미슨 그리어(Jamison Greer)는 이미 상황이 악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더욱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와는 매우 다르게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가 미국에 불리한 시스템을 조장하고 있다는 불만을 제기해 왔다. 트럼프는 아마도 매일같이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연간 1조 달러 규모의 무역 적자를 기록한다는 점을 매일 곱씹을 것이다. 또한 본인이 이른바 ‘관세맨’(tariff man)이며, 관세 부과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공공연히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EU를 참고해 미국 기술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으로,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하는 행위다. 한국은 분명 신중한 접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신중하고 전략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지금 당장 당면한 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한국의 현행 경쟁법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유사한 법안이 시행되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한국은 혁신과 경쟁을 보호하고 국가 안보를 고려한 보다 현명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불공정한 규제로 비칠 수 있는 전략을 추진할 때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을 이용한다’는 주장을 펼칠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로버트 앳킨슨은 누구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정책 싱크탱크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설립자이자 회장이다.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학자, 저술가로 워싱토니언 매거진(Washingtonian Magazine)은 그를 “기술 거인”(tech titan)으로 명명했다. 최근까지 미국 정부의 정보 인프라, 혁신, 정보기술 관련 위원회에서 근무했다.

클린턴 정부에서는 노동자, 지역사회 및 경제 변화에 관한 위원회에서 일했고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 지상교통 인프라 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미중 혁신 정책 전문가 그룹 공동의장, 트럼프 1기 때는 G7 인공지능 글로벌 파트너쉽에 임명됐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수출입은행 중국 경쟁 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에서 도시 및 지역 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브루킹스 연구소 비상임 선임 연구원, 컬럼비아대 원격정보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미국 상,하원에서 여러 차례 증언했다.


hongi@heraldcorp.com